작년 광복절 무렵 북쪽에서 불쑥 날아든 메세지.
메세지에 담긴 날카로운 관찰력과 섬세한 묘사력, 뛰어난
비유와 간결한 표현기법에 감탄했다.
감탄의 크기 만큼이나 안타까움도 컸는데, 정치적 목적을
가진 정치집단의 것이라는 '옥의 티' 때문이었다.
어느 문인의 작품이거나 인터넷 게시판 필부의 낙서 쯤이
었다면, 문학성이나 작품성에 감탄과 찬사를 아끼고 싶지
않을 명작이었다.
독자로서 감동과 찬사의 표현을 머뭇거리는 사이에 메세
지는 본래의 의도인 정치적 파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고,
우물 안 개구리 골목대장급이었던 '저딴 게'를 국제무대
에서 공인받은 '삶은 소대가리'로 키워주었다.
"저렇게 커서 뭐가 될꼬..."
"애초부터 싹수가 노랬어, 이럴줄 알았다니까..."
걱정과 염려의 혀를 차던 동네 어르신급 선지자급들께는
본색을 드러내며 '뻔할 뻔' '안봐도 비디오'를 선물한
셈이 되었다.
'태산명동에 쥐새끼' '요란하게 짖어대는 겁먹은 개'
'삶은 소대가리의 앙천대소' '쎄게 웃기는' '보기 드
물게 뻔뻔한 자' 등 공감과 탄성의 감동이 가시기도 전
에 연거푸 명작이 날아들었다.
'번지르르하게 말 보따리만 풀어놓는'
'자기가 한 말과 약속을 이행할 의지가 없고 결행할 힘
이 없으며 무맥무능한'
'서푼짜리 연극으로 가볍기 그지없는 혀놀림'
'이제부터 흘러가는 시간들은 후회스럽고 괴로울 것'
메세지에 담긴 정치적 의도에 현혹되지 않고 단어와 문
장, 표현에 동원된 관찰력, 묘사력 등의 문학적 역량에
집중한다면,
통신공간을 오가다 우연히 발견한 어느 필부의 블로그나
프로필에서 발견된 낙서나 넋두리였다면,
독자로서 감상평은 감동과 경탄을 넘어 '심금을 울린다'
는 찬사를 보내고 싶은 명작이다.
(여기까지가 이 글의 요지이며 아래는 덤이다.)
(*)
정치적 의도에 낚인 척 맞장구를 친다면,
글의 제목은 '똥차로 쓰레기차 개발리기' 쯤이 좋겠고
입은 비뚤어져도 할 말을 하는 종자가 1명이라도 있다
는 점에서 그나마 '똥차'편을 들어주고 싶기는 하지만,
혹시라도 똥차와 쓰레기차 관련 생업에 종사하는 분들
께 추호라도 누를 끼칠까 걱정되어
'오랑캐로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손 안대고 코풀기'라는, 벌써 여러차례 써먹어서
나로서는 식상한 제목으로 대신한다.
(**)
"왕이라고 모든 걸 다 알 수도 없고 다 잘할 수도 없을
테니, 모르는 건 가르쳐주고 틀린 건 타이르는 역할도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다."
[내시 따라하기] -18.09.30.-
가르치고 타이른 자가 애초에 없었다면 '공범'이고
가르치고 타일렀지만 들어처먹지 않았다면 '독박'이다.
쇼당 붙일 팻감, 선택의 여지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북한망명, 집단직찍사, 군중돌팔매] -19.02.24.-
'북한망명'은 이미 물건너 갔고
아직 남아 있는 것들도 누가 가로채기 전에
과분하고 공손한 마음으로...